본 포스팅은 2021년 11월 24일 문화유랑단 블로그를 통해 공개된 내용입니다
재작년 어느 날이었다. 평소 건드리지 않던 책상 서랍을 비워낼 겸 정리하던 중, 오랜만에 찾은 아이팟클래식이 보였다. 꽤 오랜시간동안 나의 귀를 즐겁게 달래주었던 녀석을 바라보며, 그 시간속을 잠시나마 상기해봤다. 적어도 음악만큼은 여전히 함께해주었다는 고마움이 새삼스럽게도 피어났다. 이윽고 '아직도 잘 굴러가려나?'는 생각으로 이어져 다시금 전원을 켜보았다. 시크하게 비추어지는 메시지 [배터리가 없습니다]
거기서 부터 출발되었을까? 이 녀석으로 부터 때 아닌 고난의 시간(?)이 비롯되었다는 것을.
사족이 길어지겠지만, 요약해보면 충전 이후에도 작동 되지 않는 이녀석을 살려보겠다고 발버둥을 치다 아는 가게를 통해 수리를 맡겼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7개월 가량의 시간만 흘러갔다. 호의인지 오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상기해보면 핑계라고 부를 수도 있을 법한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으니, 평정심은 어느새 바닥에 도달했다. 이만하면 인간적으로(?) 기다려 줄 만큼 기다려줬다는 판단이 섰다. 어물쩡 거리던 수리업자에게 녀석을 돌려받아 수소문 하여 찾아낸 다른 업체를 통해 녀석을 픽업한 즉시 맡겼다. 결과는? 바로 다음날 멀쩡하게. 아니, 오히려 더욱 쌩쌩해진 녀석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세부적인 컨디션 정보와 이를 어떤 식으로 수리할 것인가를 보내준 데이터를 보며, 아무리 기계치인 내가봐도 뭔가 이리저리 들 쑤신 흔적. 기껏 구해서 함께 보냈던 HDD까지. 같은 조건으로 다음날 수리를 마쳐온 그 업자에게 여태껏 뭐했냐고 묻고 싶어졌다. 그래봤자 뭔 소용이겠는가. 모두 무의미한 것을.
<1.8인치 삼성하드를 이번 난리 덕분에(?) 처음 구경했다 😮>
여튼 7개월이라는 인내의 시간. 그 전의 과정들을 모두 합쳐보니 어느덧 2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셈이다. 불편함이 여전한 이 녀석에게 일일히 태깅을 하고, 자주 듣던 음악을 몇곡 넣어 귀에 흘려보냈다. '역시...'라는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다. 아무리 시스템이 좋아지고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불편한 유선 이어폰과, 집어넣어진 이 녀석의 사운드를 당해낼 재간이 없어 보인다. 넣어둔 곡을 차례대로 완곡을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흘러갔음을 오랜 뒤에 인식할 수 있었다. 단지 음악에만 몰입하며 시간을 보낸 것이 대체 얼마만인가. 내심 반갑고, 순간 뿌듯함을 넘어 쾌감으로 밀려왔다.
이후로도 출/퇴근 길이나, 녹음을 가는 순간에도 이 녀석을 손에 쥐고, 오로지 흘러나오는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일이 잦아졌다. 왠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듣고 보는 행위를 자주하는 평상시의 시간보다 더욱 빠르게 흘러가는 기분이 드는 것이 한두번은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참으로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가 6인치 가량의 화면을 처다보고만 있는 상황. 고요함을 넘어선 적막함이 전철과 버스를 가득 메우는 공간의 호흡. 나 또한 이녀석이 없었다면, 변함없이 에어팟을 꼽고 무의식적으로 화면을 바삐 눌러가며 눈을 굴리고 있었으리라. 시간이 비례하는 기술의 발전 속에, 온전한 몰입에 진입할 수 있는 관성을 나는 얼마나 겪고 있던가. 낯선 풍경속을 바라보며 자문해봤다. 아마도, 꽤 오래되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매 순간 눈과 귀와 손가락이 항시 바쁘게 각자의 몫을 다하고 있음에도, 그것이 진정으로 몰입이라는 관성에 대입하기엔 부족함이 뒤따른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를 제대로 몰입하고 있는 것인가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가치. 클래식이라 불리는 레퍼런스가 결코 죽지 않는 이유. 12년이 흘러간 뒤에 다시금 조우한 조그만 기기의 불편함을 통해, 정작 편리하게 몰입해왔던 것이 사실은. 온전한 단어의 의미로 연결짓기에는 오점이 가득했던 행위는 아니었을까. 무언가를 열심히 몰두하여 진심을 다하는 건강한 행위. 새삼스럽다고 볼 수도 있는 이 불편하고도 작위적인 행위. 그것에서 찾은 몰입의 관성.
언젠가, 누군가에게서 '당신은 왜 아직도 팟캐스트를 고집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은적이 있다. 포괄적이나마 당시의 견해도, 지금에 와서 또한 같을 수 밖에 없는. '스스로를 온전히 집중하고 몰두할 수 있는 가치'라는 대답은, 적어도 나에게 만큼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이런 사고가 모두 같을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불편한 문물에서 찾을 수 있는 원론적인 메시지로써 그 어느때보다도 두드러지게 보이는 풍경이었다. 그런 고로,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작은 반론이 잦을 수 밖에 없는 사유로써 적용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1980년 8월 1일 개국한 MTV의 첫 상영된 뮤직비디오 곡인 더 버글스의 'Video kill the Radio star'. 그들이 MTV를 개국하며 의미 심장하게 날린 메시지에 대해, 오늘날에 와서는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적어도 내게는 한가지 늘어난 것 같다.
같은 노래를 들어도 남 달랐던 사운드에 나이를 먹어감을 실감한다
Written by SEOGA
- 2021.11.24 :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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